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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바루기] 손이 ‘시려울’ 수 없는 이유

‘겨울’ 하면 생각나는 대표적인 노래가 있다.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워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 꽁! 꽁!”으로 시작하는 ‘겨울바람’이라는 동요다. 이 동요 가사에서와 같이 많은 이가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시려워 혼났다” “퇴근길에 버스를 오래 기다렸더니 발이 너무 시려웠다” 등처럼 ‘시렵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한다.   그러나 ‘몸의 한 부분이 찬 기운으로 인해 추위를 느낄 정도로 차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는 ‘시렵다’가 아닌 ‘시리다’가 바른 표현이다. 우리말에 ‘가렵다, 두렵다, 마렵다, 어렵다’와 같이 ‘~렵다’로 끝나는 말이 많다 보니 ‘시렵다’도 맞는 표현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시렵다’를 ‘시리다’의 복수표준어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시렵고, 시렵도록, 시려워, 시렵지, 시려운, 시려우니, 시려우면, 시렵더라, 시려웠다’ 등은 모두 ‘시렵다’를 활용한 표현이므로, ‘시리고, 시리도록, 시리어(시려), 시리지, 시린, 시리니, 시리면, 시리더라, 시리었다(시렸다)’와 같이 ‘시리다’를 활용한 표현으로 고쳐 써야 한다. 따라서 위 예문 역시 “장갑을 꼈는데도 손이 시리어 혼났다” “퇴근길에 버스를 오래 기다렸더니 발이 너무 시렸다”와 같이 써야 올바른 표현이 된다.   동요 ‘겨울바람’을 맞춤법에 맞게 고쳐 보면 어떨까. “손이 시려 꽁! 발이 시려 꽁! 겨울바람 때문에 꽁! 꽁! 꽁!”으로 불러 보면 음률이 맞지 않아 영 어색하다. 따라서 가사 속의 ‘시려워’는 운율을 맞추기 위한 시적 허용으로 이해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겨울바람 때문 동요 가사

2025-03-11

[우리말 바루기] ‘하세월’과 ‘허세월’

‘제도적 장치 마련은 하세월’.   위 예문은 신문 기사의 제목 등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다. 어떤 사건·사고 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에도 문제가 언제 해결될지 모른 채 세월만 흐르고 있을 때, 이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에 주로 이런 제목을 단다.   이처럼 어떤 일이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고 막연하기만 할 때 쓰는 말이 바로 ‘하세월’이다. 그런데 ‘하세월’을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찾아보면 표제어로 올라 있지 않다. ‘하세월’은 ‘부지하세월(不知何歲月)’을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부지하세월’은 ‘언제 이루어질지 그 기한을 알 수 없음’을 이르는 한자 성어다. 사람들의 입말에서는 많이 쓰이지만, 구조상 서술하는 부분인 ‘부지(不知)’를 빼면 의미가 통하지 않기 때문인지 ‘하세월’만으로는 표준어가 되지 못했다.   “지난 2년간 허세월만 보냈다”에서와 같이 ‘헛되이 보내는 시간’을 나타낼 때 ‘허세월’이란 단어를 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허세월’도 사전에는 등재돼 있지 않다. 하는 일 없이 세월만 헛되이 보내는 걸 일컬어 ‘허송세월(虛送歲月)’이라 하는데, 이를 줄여 ‘허세월’로 쓰는 듯하다. 비슷한 표현으로 ‘허도세월(虛度歲月)’도 있지만, 너무 길고 어렵다면 ‘헛세월’이라고 써도 된다. ‘헛세월’은 보람 없이 지내 온 세월을 의미하는 단어다.   ‘하세월’과 ‘허세월’ 모두 언중(言衆)의 사용이 많아지면 표준어로 등재될지 모르지만 현재는 표준어가 아니므로 공적인 문서 등에서 마구 사용하는 것은 곤란하다.우리말 바루기 신문 기사 제도적 장치

2025-03-10

[우리말 바루기] 난과 란의 법칙

신문을 꾸준히 읽어 온 애독자라면 ‘나도 한 번쯤은 신문에 내 생각을 펼쳐 보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런 생각을 지닌 독자들을 위해 신문에는 독자들이 투고한 글을 싣는 난(欄)이 있다. 바로 ‘독자 투고란’이다.   여기서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있을 듯하다. ‘독자가 투고한 글을 싣는 난’을 왜 ‘투고난’이 아닌 ‘투고란’이라고 하는지 의문이 들 수 있기 때문이다.   ‘欄(란/난)’은 ‘구분된 지면’을 의미하는 말로, 한자어 뒤에 결합할 때는 독립적인 단위로 인식되지 않으므로 본음대로 적지만 고유어나 외래어 뒤에 결합할 때는 독립적인 단위로 인식되므로 두음법칙을 적용해 ‘난’으로 적는다.   어렵게 느껴지지만 구분하는 법은 쉽다. 앞에 나오는 낱말이 한자어인지, 고유어나 외래어인지만 알면 힘들지 않게 구분해 쓸 수 있다. 앞에 오는 말이 한자어일 경우 ‘란’, 고유어나 외래어일 경우 ‘난’으로 쓰면 된다.   따라서 ‘투고란(投稿欄)’ ‘광고란(廣告欄)’ ‘비고란(備考欄)’ ‘정치란(政治欄)’ ‘문화란(文化欄)’ ‘경제란(經濟欄)’ 등은 모두 한자어와 결합하고 있으므로 ‘란’이라고 써야 바른 표기가 된다.   ‘어린이난’ ‘생각난’ 등은 고유어가 앞에 나오므로 ‘난’으로 적으면 된다. ‘가십난’ ‘이슈난’ ‘칼럼난’ 등의 경우 외래어와 결합하고 있으므로 이 역시 ‘난’으로 쓰면 된다.   “독자의 소리를 싣는 난” “빈 난을 채우다”에서와 같이 ‘欄’이 단독으로 사용될 경우엔 두음법칙을 적용해 ‘난’으로 쓰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모두 한자어

2025-03-09

[우리말 바루기] 양반다리, 아빠다리, 나비다리

‘양반다리’가 쓰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국어사전에는 2016년이 돼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이때 국립국어원의 우리말샘에는 ‘가부좌’의 방언으로 경남 지역에서 쓰는 말이라고 올랐다. 표준어가 된 건 2017년이다. 신문에서는 1980년대 들어서야 보이기 시작한다. 그 전에는 같은 말인 ‘책상다리’를 썼다.   ‘양반다리’가 많이 쓰이기 시작한 이유는 알기 어렵다. ‘양반’이 사람들에게 새삼스레 들어오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양반’은 ‘문반’과 ‘무반’을 아우르던 말이었다. 이후 지배층에 있는 신분을 뜻하다 점잖고 예의 바른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 됐다. 예의 바른 사람 ‘양반’. ‘양반다리’는 “예의 바르게 앉은 자세”였다.   최근 국립국어원이 ‘2024년 국어 사용 실태 조사(어휘)’ 결과를 공개했다. 이 조사에 따르면 ‘양반다리’를 대신해 ‘아빠다리’가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된다. 전체적으론 ‘양반다리’(39.4%), ‘아빠다리’(26.6%), ‘가부좌’(17.6%), ‘책상다리’(13.8%) 순인데, 30세 미만에선 ‘아빠다리’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지금 젊은 층이 더 어렸을 때 ‘양반다리’는 어렵게 들렸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양반다리’를 ‘아빠다리’라고 가르쳤다.   2020년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아이들이 자주 접하는 성차별어와 개선안을 모아 발표했다. 시민들은 ‘아빠다리’ 대신 ‘나비다리’로 바꾸자고 했다. 아이들이 수업에서 ‘아빠다리’보다 ‘나비다리’를 들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비다리’는 나비 날개를 본뜬 말이었다. 성별을 나타내지 않는다. 10년, 20년 뒤 젊은 층도 ‘나비다리’를 익숙하게 쓰고 있을까?우리말 바루기 양반다리 아빠다리 양반다리 아빠다리 최근 국립국어원 이때 국립국어원

2025-03-06

[우리말 바루기] 아내와 와이프

1969년 가을, 친구에게 편지를 쓰던 한 남자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온 참이었다. 편지 받을 사람은 영국인. 대전에 살고 있었다. 친구에게 자기 부인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지 적절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처, 부인, 아내, 집사람, 안사람…? 영 내키지 않았다. 맞지 않는 옷 같았다. 고심 끝에 남자는 ‘와이프’라고 썼다. 그러고는 어쩔 수 없이 ‘영어’를 빌렸다는 말도 적었다. 물론 한글로 쓴 편지였다.   이제 ‘와이프’는 조금 더 편한 말이 된 것일까. 최근 국립국어원이 공개한 ‘2024년 국어 사용 실태 조사(어휘)’에 따르면 결혼한 남성은 자신의 여성 배우자를 친구에게 소개할 때 ‘와이프’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그 다음은 ‘아내’ ‘집사람’이었다. 결혼한 여성은 ‘남편’을 가장 많이 썼다. ‘신랑’이 그 다음이었다. 이 조사에서 남성 20대는 66.4%, 30대는 65.6%, 40대는 56.4%가 ‘와이프’라고 했다. 여성 20대는 59.7%, 30대는 53.2%, 40대는 51.9%가 ‘남편’이었다.   1997년 당시 문화체육부는 ‘와이프’ 대신 ‘아내, 안사람, 집사람, 부인, 처’ 같은 우리말을 쓰자고 했다. 그렇지만 젊은이들에게 ‘부인’ ‘처’는 낡아버린 듯 보였다. ‘아내, 안사람, 집사람’은 어른들처럼 입에 붙지 않았다. 안에 있는 사람 ‘안사람’, 집에 있는 사람 ‘집사람’은 부담스러웠다. ‘남편’의 반대쪽에 있던 ‘여편’은 ‘네’가 붙은 말이 더 쓰이면서 사라져 갔다. 1969년의 남자와 똑같지는 않지만, 현재의 남자들도 ‘와이프’를 ‘어쩔 수 없이’ 더 선택한 것은 아닐지. 다른 말은 없을까?우리말 바루기 와이프 아내 아내 집사람 아내 안사람 여성 배우자

2025-03-05

[우리말 바루기] 개와 강아지, 괴와 고양이

집에서 키우는 동물은 이제 단순히 즐기고 좋아하는 대상이 아니다. 함께하는 짝,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이 많아졌다. 가까이 두고 귀여워한다는 ‘애완’이 아니라 짝을 뜻하는 ‘반려’를 붙여 ‘반려동물’이라고 말한다. 사람과 동물이 정서적으로 더 교감을 나누는 시대가 됐다. 그렇다 보니 반려동물 가운데 대표적인 ‘개’를 가리키는 말도 달라져 간다.   집에 개가 있는 사람들은 그 개가 다 컸어도 ‘개’라고 하지 않는다. 대부분 ‘강아지’라고 한다. ‘강아지’라고 해야 더 친하고 가까워 보인다. ‘개’는 조금 거리를 두는 느낌을 준다. ‘개’에서는 함께하는 가족이라는 의미가 읽히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자기 집 ‘강아지’를 ‘개’라고 불러도 마음이 그리 편치는 않다. ‘강아지’가 바른말처럼 여겨진다. 반려동물은 ‘개’가 아니라 ‘강아지’로 바뀌어 간다.   고양이는 일찍이 그랬다. 옛날에 ‘고양이’는 ‘괴’였다. ‘괴’의 새끼를 가리키는 말이 ‘고양이’였다. ‘괴’에 작은 것을 가리키는 말 ‘앙이’가 붙어 ‘괴앙이’ ‘괴양이’로도 불리다가 ‘고양이’가 됐다. 이제는 다른 말들에서 ‘괴’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글씨를 아무렇게나 쓴 것을 뜻하는 ‘괴발개발’, 개 짖는 소리와 고양이 우는 소리라는 뜻의 ‘개소리괴소리’에 ‘괴’가 보인다. ‘돼지’도 본래는 새끼를 뜻하는 말이었다. 윷놀이에서 ‘도’가 ‘돼지’인데, 이 ‘도’(원말은 돝)에 작은 것을 뜻하는 ‘아지’가 붙어 ‘되아지’ ‘되야지’ ‘도야지’로 불리다가 ‘돼지’가 됐다.우리말 바루기 강아지 고양이 반려동물 가운데

2025-03-04

[우리말 바루기] ‘한가닥(?)’ 했던 사람

나이가 들수록 오래된 친구들과 만나 팍팍한 현실 이야기보다 학창 시절 이야기 등 옛날에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 떠드는 게 재미있다고들 한다. 철모르던 시절의 이야기를 하면 현재의 시름을 잊고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제일 잘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는 과거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주제라 할 수 있다. 이는 주로 “왕년에 내가 한가닥 하던 시절에는…”으로 시작하곤 하는데, 매우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여기엔 틀린 표현이 숨어 있다.   어떤 분야에서 특출나게 뛰어나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많은 사람이 이처럼 ‘한가닥 한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한가락 한다’고 해야 바르다. ‘어떤 방면에서의 썩 훌륭한 재주나 솜씨’를 나타내는 단어는 ‘한가닥’이 아닌 ‘한가락’이기 때문이다.   ‘한가닥’은 “한 가닥 희망의 빛줄기가 보인다” “한 가닥 기대를 걸어 보겠다” 등처럼 쓰일 수는 있다. 이때의 ‘한 가닥’은 ‘한’과 ‘가닥’ 두 단어가 결합한 관용적 표현으로, ‘아주 약간’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합성어가 아닌 각각의 두 단어를 연이어 쓴 것이므로 붙여 쓰지 않고 ‘한 가닥’과 같이 띄어 써야 바르다.   ‘한가락’은 붙여 쓰면 ‘어떤 분야에서의 훌륭한 재주나 솜씨’라는 의미가 되지만, “엿 한 가락” “노래 한 가락”에서와 같이 띄어 쓰면 또 다른 의미가 되니 주의해 써야 한다. 토막이나 노랫가락을 세는 단위로 ‘가락’을 쓰기도 하기 때문이다.우리말 바루기 한가닥 현실 이야기 과거 이야기 가닥 희망

2025-03-03

[우리말 바루기] ‘덮히다’가 아니라 ‘덮이다’

어린 시절에는 눈이 오면 뛰어놀 생각에 무작정 좋았는데, 어른이 되니 출퇴근길이 걱정된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세상이 눈으로 뒤덮혀 새로운 세계에 온 것 같다”는 낭만적인 생각은 어른이 되면서 점점 사라지고, “눈으로 뒤덮힌 도로 때문에 여기저기에서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는 교통 속보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게 현실이다.   ‘뒤덮다’를 피동 표현으로 나타낼 때 위에서와 같은 실수를 많이 한다. ‘뒤덮이다’와 ‘뒤덮히다’는 발음이 비슷하다 보니 어느 것이 바른 표현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뒤덮다’의 피동사는 ‘뒤덮히다’가 아닌 ‘뒤덮이다’이다. 따라서 ‘뒤덮히고, 뒤덮히면, 뒤덮힌, 뒤덮혀, 뒤덮혔다’ 등은 모두 ‘뒤덮이고, 뒤덮이면, 뒤덮인, 뒤덮여, 뒤덮였다’와 같이 고쳐야 바른 표현이 된다.   ‘덮다’ 또한 마찬가지다. ‘덮다’의 피동사 역시 ‘덮히다’가 아닌 ‘덮이다’이므로, “베일에 덮여 있던 사건”에서와 같이 ‘덮이다’를 활용한 표현을 써야 바르다.   피동사(남의 행동을 입어서 행해지는 동작을 나타내는 동사)와 사동사(문장의 주체가 자기 스스로 행하지 않고 남에게 그 행동이나 동작을 하게 함을 나타내는 동사)를 만들 때 접사 ‘이’와 ‘히’ 중 어떤 것을 써야 할지 무척 헷갈린다. 그런데 피동과 사동이 만들어지는 데 일정한 규칙이 없어 각각의 어휘에 따라 어떤 접사가 오는지 찾아보고 익히는 수밖에 없다.   정리하자면 ‘덮히다’ ‘뒤덮히다’가 아닌 ‘덮이다’ ‘뒤덮이다’를 활용한 낱말을 써야 바른 표현이 된다는 걸 기억하자.우리말 바루기 피동 표현 교통 속보

2025-03-02

[우리말 바루기] ‘우리나라’와 ‘저희 나라’

우리나라 사람은 3·1운동 하면 가장 먼저 무엇을 떠올릴까. 유관순 열사와 대한 독립 만세라고 답한 이가 가장 많았다. 지난 2019년 문화체육관광부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실시한 국민 인식 조사 결과다.   여기에 쓰인 표현처럼 우리 한민족이 세운 나라를 스스로 이를 때 ‘우리나라’라고 말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 ‘우리나라’가 가끔 격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나 윗사람에게 이야기할 때 ‘저희 나라’로 둔갑하는 경우가 있다. “저희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선조들의 마음이 모여 대한민국의 역사를 만들었습니다”와 같이 얘기하는 것은 어법에 어긋난다. 같은 국민끼린 ‘우리나라’라고 해야 한다.   왜일까. ‘저희’는 ‘우리’의 낮춤말이다. 자신을 낮춤으로써 상대를 높이는 방법이다. 청자를 포함하는 같은 구성원끼리의 대화에서 ‘저희’라고 하면 어색하다. 듣는 사람도 같은 구성원이므로 높여야 할 상대가 없기 때문이다. 한동네 사람이나 같은 회사를 다니는 사람끼리 ‘저희 동네’ ‘저희 회사’라고 하지 않는다. ‘우리 동네’ ‘우리 회사’라고 하는 게 자연스럽다. 이웃 동네 어른에게 “저희 동네는 인심이 좋아요”라고 할 순 있지만 같은 동네 어른에게 “저희 동네는 인심이 좋아요”라고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외국인들에게 “저희 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고 얘기하는 것은 괜찮을까.   “우리나라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고 쓰는 게 적절하다. 문법적으로 틀렸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국가나 민족은 대등한 관계이므로 굳이 자기 나라나 민족을 낮출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 우세하다. 이런 이유에서 방송 등에서 ‘저희 나라’라고 얘기했다가 비난받았던 정치인과 연예인도 꽤 있다. 국립국어원도 ‘저희 나라’ ‘저희 민족’이 아니라 ‘우리나라’ ‘우리 민족’으로 쓰는 게 자연스럽다는 입장이다. “새해가 되면 한국에선 어떤 음식을 먹습니까?”와 같은 외국인의 질문에 “우리나라에선 떡국을 먹습니다”로 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나라 저희 나라 자기 나라 우리나라 사람

2025-02-27

[우리말 바루기] 꾐에 빠지면 안 돼요

전화 금융 사기 기법이 점점 진화하고 있다. 경찰·검찰은 물론 시중은행까지 사칭하며 피해자들을 감쪽같이 속이고 있다고 한다. 최근에는 금융감독원이라 칭하면서 이자가 저렴한 대출로 갈아탈 수 있게 해준다며 한 푼이 절박한 사람들을 속이는 사례가 등장하기도 했다.   이를 전하는 소식 가운데는 “꾀임에 넘어간 사람 중 대부분은 현금을 이체해 줬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꾐에 넘어가 평범한 이들이 한순간에 범죄의 늪에 빠지고 있다” 등과 같은 표현을 접할 수 있다.   이처럼 속아 넘어감을 뜻하는 단어로 ‘꾀임’ 또는 ‘꾐’이 쓰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느 것이 맞는 말일까?   그럴듯한 말이나 행동으로 남을 속이거나 부추겨 자기 생각대로 끈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단어는 기본형이 ‘꼬이다’이다. ‘꼬이다’를 줄여 ‘꾀다’고 쓸 수도 있다. 명사형으로 만들 경우 ‘꼬이다’는 ‘꼬임’, ‘꾀다’는 ‘꾐’이 된다. 따라서 ‘꼬이다’나 ‘꾀다’, ‘꼬임’이나 ‘꾐’ 어느 것을 써도 무방하다.   ‘꾀다’에 피동형을 만들어주는 접사 ‘-이-’를 붙여 ‘꾀이다’고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때는 ‘꼬이다’ ‘꾀다’와는 반대로 ‘~에게 꾐을 당하다’ ‘남의 꾐에 말려든다’는 뜻이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피해자들은 이자가 낮은 대출로 갈아타게 해준다는 말에 꾀여(←꾀이어) 사기를 당했다” 등처럼 쓸 수 있다.   서두의 예문 “꾀임에 넘어간 사람 중 대부분은 현금을 이체해 줬다”는 문장에서는 단순히 남을 속이거나 부추기는 것을 뜻하므로 ‘꾀임’이 아니라 ‘꼬임’ 또는 ‘꾐’이라고 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전화 금융 자기 생각 소식 가운데

2025-02-26

[우리말 바루기] ‘회자’가 그런 뜻이었어?

‘회자(膾炙)’는 회와 구운 고기라는 의미다. 오래 사랑받으면서 사람들이 즐기던 음식이란 점에서 칭찬을 받으며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림을 이르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날고기를 뜻하는 회자가 어감상 마치 ‘돌아올 회(回)’를 사용해 과거의 일을 언급한다는 의미로 오용하는 경우가 많다.   바른 사용의 예는 “현재 넷플릭스에서 시청할 수있는 영화 ‘살인의 추억’은 한국 스릴러 영화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현재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처럼 쓰인다.   부정적이거나 나쁜 일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릴 땐 ‘회자’란 말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럴 때는 “구설에 오르다”는 표현을 써야 한다. 안 좋은 일로 남의 얘깃거리가 될 때 사용한다. 이를 “구설수에 오르다”고 하는 사람도 많지만 잘못된 표현이다. ‘구설’은 시비하거나 헐뜯는 말이고 ‘구설수’는 그런 말을 들을 운수다.   “구설에 오르다” 대신 “말밥에 오르다” “입길에 오르다”로도 표현한다. ‘말밥’은 좋지 못한 이야기의 대상을, ‘입길’은 남의 흉을 보는 입놀림을 이르는 말이므로 안 좋은 일로 다른 사람의 말거리가 될 때 쓸 수 있다. “입방아에 오르내리다”도 사용할 수 있지만 ‘입방아’의 대상은 나쁜 일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남의 말을 하기 좋아하는 이들이 어떤 사실을 화제로 삼아 이러쿵저러쿵 쓸데없이 뒷이야기를 할 때 두루 쓰인다.우리말 바루기 회자 회자가 어감상 한국 스릴러

2025-02-25

[우리말 바루기] 뼈다구(?) 해장국

전날 술을 먹고 불편해진 속을 푸는 데는 역시 해장국이 최고다. 해장국에는 ‘콩나물 해장국’ ‘황태 해장국’ 등이 있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돼지등뼈를 주재료로 해서 우거지 등을 넣어 끓인 해장국이다. 이 해장국은 술을 먹은 다음날 속을 풀 때도 좋지만 술안주로도 그만이다. 그럼 이 해장국은 무슨 해장국이라 부를까?   ㄱ. 뼈다구 ㄴ. 뼈다귀 ㄷ. 뼉다구 ㄹ. 뼉다귀   간판이나 메뉴판에는 ‘뼈다구 해장국’이라 적혀 있는 곳이 많지만 ‘뼈다구’는 방언, 즉 사투리다. ‘뼉다구’와 ‘뼉다귀’ 역시 방언이다. ㄴ. ‘뼈다귀’만 표준어다. ‘뼈다귀’는 뼈의 낱개를 가리키는 말이다. “뼈다귀를 손으로 잡고 살집을 뜯어 먹었다”처럼 쓰인다. ‘뼈다귀’는 ‘뼈’를 낮잡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 친구는 너무 말라서 뼈다귀만 남은 것 같다” 등과 같이 사용된다. 따라서 ‘뼈다귀 해장국’이 바른 이름이다. 이 해장국에 감자를 많이 넣고 끓이면 ‘뼈다귀 감자탕’이 된다.   ‘뼈다구’나 ‘뼉다구’가 표준어가 아니므로 ‘개뼈다구’나 ‘개뼉다구’도 마찬가지다. ‘개뼈다귀’가 맞는 말이다. ‘개뼈다귀’는 개의 뼈다귀를 뜻한다. ‘개뼈다귀’는 별 볼 일 없으면서 끼어드는 사람을 경멸하는 태도로 속되게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이건 또 어디서 굴러먹은 개뼈다귀야”처럼 쓰인다.우리말 바루기 뼈다구 해장국 뼈다구 해장국 뼈다귀 해장국 콩나물 해장국

2025-02-24

[우리말 바루기] '수입산 철강'의 오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얼마 전 한국을 비롯해 중국·일본 등 외국에서 만들어진 철강과 알루미늄에 ‘관세 폭탄’을 안겨 각국이 대응에 나섰다. 한국 정부도 관세 면제를 위해 대미 접촉에 나서는 등 대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산을 포함한 수입산 철강에 25%의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와 같은 기사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잘못된 표현이 하나 숨어 있다. 바로 ‘수입산’이다.   ‘-산(産)’은 주로 지역이나 연도를 나타내는 말 뒤에 붙어 ‘거기에서 또는 그때에 산출된 물건’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따라서 ‘제주산 갈치’ ‘벨기에산 초콜릿’ ‘1997년산 와인’ 등처럼 쓸 수 있다. 지역명을 붙이지 않고 자기 나라에서 생산된 물건을 얘기할 땐 ‘국내산’ 또는 ‘국산’이라 쓰기도 한다.   문제는 외국에서 생산된 물건을 가리킬 때다. 국가명을 붙이지 않고 포괄적으로 얘기할 때 예문처럼 ‘수입산’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으나 이는 잘못된 표현으로 ‘외국산’이라고 해야 바르다.   ‘수입’은 다른 나라의 상품이나 기술 등을 국내로 사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산’이 장소나 연도 뒤에 붙는다는 걸 기억한다면 ‘수입산’이 영 어색한 표현이란 것을 알아챌 수 있다.   ‘수입’이란 단어를 꼭 쓰고 싶다면 ‘-산’을 빼고 ‘수입 철강’ ‘수입 알루미늄’이라고 하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수입산 철강 수입산 철강 수입 철강 수입 알루미늄

2025-02-23

[우리말 바루기] 단어도 짝이 있다

우리 속담에 “짚신도 짝이 있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짝이 있다는 얘기다. 단어도 마찬가지다. 단어도 저마다 타고난 속성이 있어 둘을 붙여 놓았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것이 있다. 앞말의 특성 때문에 뒷말의 선택에 제약이 온다고 해서 이런 것을 ‘의미상 선택 제약’이라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기지개’다. “꽃망울이 기지개를 펴는 봄날이다” “벚꽃들이 기지개를 펴고 봄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다” “기지개를 펴고 활기차게 움직여 보자” 등처럼 사용된다. ‘기지개’는 피곤할 때 몸을 쭉 펴고 팔다리를 뻗는 일을 가리키는 낱말이다. ‘기지개’ 자체에 ‘펴다’는 뜻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의미가 중복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펴다’가 아니라 ‘켜다’와 결합시켜 ‘기지개를 켠다’는 식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예문도 ‘지지개를 켜는’ ‘기지개를 켜고’로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앙금’도 이런 단어 가운데 하나다. ‘앙금’은 녹말 등의 부드러운 가루가 물에 가라앉아 생긴 층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구성원 간 앙금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처럼 사용해서는 안 된다. 이미 다 가라앉아 생긴 것이 ‘앙금’이어서 더는 가라앉을 수가 없다. ‘앙금이 가시지 않고 있다’와 같이 ‘가시다’는 표현을 활용해야 한다.   ‘하락세’도 마찬가지다 “하락세로 치닫고 있다”는 말을 많이 쓴다. 그러나 ‘하락세’는 아래로 떨어지는 것을, ‘치닫다’는 위쪽으로 달려 올라가는 것을 뜻하므로 서로 충돌이 일어난다. “하락세로 내리닫고 있다”나 “하락세로 내닫고 있다”고 해야 한다.우리말 바루기 단어 단어 가운데 의미상 선택 우리 속담

2025-02-20

[우리말 바루기] 나날이, 다달이, 철철이

“일취월장이 뭔지 알죠?” 이런 질문을 받으면 난감하다. 나만 모르는 줄임말인가 의심부터 들어서다. 인터넷엔 ‘일찍 취업해 월급 모아 장가가자’ ‘일요일에 취하면 월요일에 장난 아니다’는 언어유희가 떠돈다. 일취월장(日就月將)은 ‘시경’에서 나온 말이다. 나날이 다달이 자라거나 발전함을 이른다.   얼마 전 일취월장의 뜻풀이에 나온 ‘다달이’가 화제가 됐다. 한 교양 프로그램의 문제로 출제되면서다. 달마다를 이르는 말로 ‘달달이’를 정답으로 꼽은 사람이 많았지만 ‘다달이’로 표기하는 게 바르다. 매일매일을 이르는 ‘나날이’도 ‘날날이’로 사용하지 않는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 소리가 나지 않으면 안 나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제28항에 따른 것이다. ‘ㄹ’ 받침을 가진 말이 합성어나 파생어를 형성할 때 ‘ㄹ’ 받침이 발음되지 않게 바뀌었다면 바뀐 대로 표기한다는 얘기다. 대체로 끝소리 ‘ㄹ’은 ‘ㄴ, ㄷ, ㅅ, ㅈ’으로 시작하는 말 앞에서 탈락한다. 따님(←딸+님), 차돌(←찰-+돌), 화살(←활+살), 바느질(←바늘+질) 등과 같이 쓰인다.   ‘날’은 ‘ㄴ’으로, ‘달’은 ‘ㄷ’으로 각각 시작하는 말이므로 ‘날날이’ ‘달달이’가 아니라 그 앞의 받침 ‘ㄹ’이 탈락해 ‘나날이’와 ‘다달이’가 된다. 돌아오는 철마다를 뜻하는 ‘철철이’의 경우는 이와 다를까? ‘ㄹ’ 받침 뒤에 ‘ㅊ’으로 시작하는 말이 왔으므로 앞의 ‘ㄹ’을 탈락시키지 않고 그대로 ‘철철이’라고 표기한다. 우리말 바루기 교양 프로그램 맞춤법 제28항

2025-02-19

[우리말 바루기] '애띤' 아닌 '앳된' 얼굴

어릴 적에는 어른처럼 보이고 싶어 어서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나이가 들면 한 살이라도 젊어 보이고 싶은 게 대부분 사람의 마음일 것이다.   만약 누군가에게서 “나이에 비해 애띄어 보인다” “애띤 얼굴이 내 나이보다 다섯 살은 어려 보인다” “얼굴이 앳뗘 보여 나보다 훨씬 어린 줄만 알았다” 등과 같은 말을 듣는다면 더없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이런 얘기를 듣고 싶다면 그만큼 나이가 들었다는 방증일지 모른다.   애티가 있어 어려 보인다는 의미를 나타낼 때 이처럼 ‘애띠다’ ‘애띄다’를 활용한 ‘애띄어’ ‘애띤’ ‘앳뗘’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을 볼 수 있다.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었다” “붉은빛을 띤 장미”에서와 같이 감정이나 빛깔 등을 가지고 있음을 나타낼 때 ‘띠다’고 표현하다 보니 ‘아이(애)’ 같은 느낌을 ‘띠고’ 있다고 생각해 ‘애띠다’고 쓰는 듯 보인다. 여기에 사이시옷을 붙여 ‘앳띠다’처럼 사용하기도 한다. ‘띠다’를 ‘띄다’로 바꿔 ‘애띄다’ ‘앳띄다’와 같이 표기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모두 잘못된 표현이다. 애티가 있어 어려 보인다는 뜻으로는 ‘앳되다’가 바른말이다. ‘앳되고, 앳된, 앳돼’ 등으로 활용된다. 따라서 앞서 든 예문은 “나이에 비해 앳되어 보인다” “앳된 얼굴이 내 나이보다 다섯 살은 어려 보인다” “얼굴이 앳돼 보여 나보다 훨씬 어린 줄만 알았다” 등으로 고쳐야 한다.   얼굴뿐 아니라 목소리가 어리게 느껴질 때도 ‘앳되다’는 표현을 사용한다. “풋풋하고 앳된 목소리에 가슴이 설렜다” “앳된 음성이 전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등과 같이 쓸 수 있다.우리말 바루기 얼굴 정작 나이

2025-02-18

[우리말 바루기] 더는 ‘더 이상’을 쓰지 말자

더 이상 실망시키지 마 아직은 널 좋아하니까/ 더 이상 꾸미려 하지 마 원래 네 모습이 더 좋으니까…   ‘더 이상’이라는 노래 제목이 꽤 많다. 그 가운데 가사를 하나 옮긴 것이다. ‘더 이상’이란 말에서는 무언가 부정적인 요소가 생겨 그것에서 벗어나려는 상황이 그려진다. 연인 관계에서도 이러한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더 이상’이라는 노래 제목이 많은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일상에서도 ‘더 이상’이라는 말이 자주 쓰인다. 몇년 전 드라마 ‘SKY 캐슬’에서도 “더 이상 지옥에서 살기 싫어”라는 외침이 명대사로 회자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자주 사용되는 ‘더 이상’이라는 표현에는 어법상 다소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더’는 ‘계속해’ 또는 ‘그 이상으로’를 뜻하는 말이다. “조금 더 기다리자”에서는 ‘계속해’란 의미로 쓰였다. “날씨가 어제보다 더 춥다”에서는 ‘그 이상으로’를 뜻한다. ‘이상(以上)’은 수량이나 정도가 일정한 기준보다 더 많거나 나음을 나타내는 말이다. “만 20세 이상 가능하다” “둘은 보통 이상의 관계다”처럼 사용된다.   결국 ‘더’와 ‘이상’은 뜻이 비슷하고 ‘더’에 ‘이상’의 의미가 포함돼 있다. 따라서 ‘더 이상’은 의미가 중복되는 말이다. 또한 부사는 동사나 형용사를 꾸미는 기능을 하는데 ‘더 이상’은 부사가 명사를 수식하는 형태라 지극히 기형적인 표현이다. ‘더’의 반대말이 ‘덜’인데 ‘덜 이하’라고 하면 몹시 어색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더 이상’이 이렇게 널리 쓰이게 된 것은 영어의 ‘not…any more’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이 있다. 이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로 암기하거나 단순 번역하면서 ‘더 이상’이란 표현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I can‘t stand any more.”를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로 번역하는 식이다.   해결은 간단하다. 문맥에 맞추어 ’더‘나 ’더는‘으로 바꾸면 된다. “네가 돌아온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더 이상 우리 관계를 지속할 수 없어”에서 ’더 이상‘은 각각 ’더‘ ’더는‘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우리말 바루기 연인 관계 sky 캐슬 이상 지옥

2025-02-17

[우리말 바루기] ‘다시 한 번’, ‘다시 한번’

직장인과 대학생이 가장 헷갈리는 맞춤법으로 띄어쓰기를 꼽은 적이 있다. 우리말에서 띄어쓰기는 정말 어렵다. 띄어쓰기의 어려움을 보여 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가 ‘한 번’이다.     단위는 띄어 쓴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다. 따라서 ‘한 번’이 횟수를 나타낼 때는 띄어쓰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한 번 해서 안 되면 두 번, 세 번 계속 해야 한다”처럼 표기하면 된다. 그러나 ‘한 번’이 시험 삼아 시도함, 기회 있는 어떤 때 등을 나타낼 때는 붙여 써야 한다. 합성어로 취급하기 때문이다. “한번 먹어 볼까” “언제 밥 한번 먹읍시다” 등이다.   그렇다면 ‘다시 한 번’은 어떻게 될까? “다시 한 번 손님을 쳐다보았다”는 문장을 보자. 과거 국립국어원은 이 경우의 띄어쓰기에 대한 질문에 ‘한 번’이 문맥상 횟수를 나타내면 띄어 쓰고 그렇지 않으면 합성어로 붙여 써야 한다고 원론적 답변을 내놓았다. 그러다 보니 여기에서 ‘한 번’을 띄어야 한다, 붙여야 한다 논란이 많았다. 문맥으로도 의미 판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혼선이 이어지자 국립국어원은 다행히 2015년 표준정보보완심의회 의결을 거쳐 의미에 상관없이 ‘다시 한번’의 구 형태에서는 ‘한번’을 붙여 쓴다고 결정했다.   즉 문맥을 따지지 않고 ‘다시 한번’으로 붙여 쓰면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시 한번’에서 ‘한번’은 무조건 붙여 쓰면 된다.우리말 바루기 문맥상 횟수 표준정보보완심의회 의결 과거 국립국어원

2025-02-16

[우리말 바루기] 양면작전과 양동작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달래고 으르는 방법을 즐겨 사용한다. 북한이 군사행동을 하면 후회할 것이라고 주장하다가도 자신은 누구보다 평화적인 해법을 선호한다고 말하는 식이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1기 집권 당시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에 이르게 된 과정도 제재와 대화를 병행한 대북 정책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처럼 서로 다른 두 전략을 동시에 구사하는 것을 뭐라고 할까?   ‘양동(陽動)작전’이라고 하는 이가 많지만 ‘양면(兩面)작전’이라고 해야 바르다. “강한 힘을 기반으로 한 압박과 외교를 통한 대화를 적절히 구사해 온 양동작전이 김정은을 움직였다”와 같이 쓰면 안 된다. 이때는 ‘양면작전’이라고 하는 게 적절하다. 두 방면에서 동시에 하는 작전을 이르기 때문이다.   ‘양동작전’은 적의 경계를 분산시키기 위해 장비나 병력을 움직여 공격할 것처럼 적을 속이는 것을 말한다.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성동격서(聲東擊西)’와 뜻이 통한다. 영덕 장사상륙작전도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시키기 위해 인민군에 대한 기만술을 펼친 양동작전의 하나였다.   ‘양면작전’과 ‘양동작전’은 다르다. “중국은 대미 통상 보복을 경고하고, 금융 부문을 포함한 중국 시장에 미국 기업이 접근하도록 장려하는 양동작전을 대책으로 논의해 왔다”고 하면 안 된다. ‘양면작전’으로 고쳐야 바르다. 우리말 바루기 양면작전 양동작전 영덕 장사상륙작전 도널드 트럼프 대북 정책

2025-02-13

[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다랗다’의 사연

기다랗고 가는 목에 타원형의 얼굴. 모딜리아니 초상화의 특징이다. 이런 화풍은 그의 병증이 한몫했다는 주장도 있다. 모딜리아니의 작품 속 형태 변형이 심한 난시와 관련됐다는 것이다.   매우 길다는 의미의 단어 ‘기다랗다’도 잘못된 형태로 종종 표현되곤 한다. “긴 타원형의 얼굴 아래로 음악처럼 흐르는 길다란 목” “백조같이 길다랗고 가는 목”처럼 쓰면 안 된다. ‘기다란’ ‘기다랗고’로 고쳐야 바르다. ‘길다랗다’를 기본형으로 알고 잘못 활용한 경우다.   ‘길다’에 그 정도가 꽤 뚜렷하다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 ‘-다랗다’가 붙은 말이므로 ‘길다랗다’로 읽고 써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왜 어간 ‘길-’에서 ㄹ이 탈락한 ‘기다랗다’를 표준말로 삼은 걸까? 발음이 [기ː다라타]로 난다. 끝소리가 ㄹ인 말과 딴 말이 어울릴 때 ㄹ소리가 안 나면 나지 않는 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8항 규정에 따랐다.   ‘높다랗다(←높다)’와 같이 용언의 어간 뒤에 자음으로 시작된 접미사가 붙어서 된 말은 어간의 원형을 밝혀 적는 게 원칙이나 ‘기다랗다’는 변한 형태를 표준어로 삼았다. ‘가느다랗다(←가늘다)’도 같은 예다.   ‘짤따랗다(←짧다)’는 왜 이런 형태가 됐을까? 겹받침의 끝소리가 드러나지 않을 땐 소리대로 적는다는 맞춤법 21항 규정 때문이다. [짤따라타]로 발음되므로 ‘짧’에서 ㅂ은 버리고 뒤의 접미사 ‘-다랗다’도 소리를 반영해 ‘짤따랗다’가 됐다. ‘널따랗다(←넓다)’ ‘얄따랗다(←얇다)’도 같은 이유로 표기가 정해졌다. ‘굵다랗다(←굵다)’는 같은 겹받침 단어이지만 뒤에 있는 받침인 ㄱ이 발음되므로 원형을 밝혀 적는다.우리말 바루기 접미사 사연 모딜리아니 초상화 형태 변형 얼굴 아래

20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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